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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6장 9~11절 해석|죄의 목록보다 중요한 바울의 진짜 메시지

by 더지앤지 2026.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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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6장 9~11절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주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음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인가?”

“간음과 성폭행은 같은 의미인가?”

“우상숭배는 우상에게 절하는 것만 말하는가?”

“과거에 이런 죄를 지은 사람은 정말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 등장하는 죄의 목록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특히 고린도전서 6장 11절까지 함께 읽어야 이 말씀이 전하려는 복음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납니다.

바울은 죄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면서도 동시에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될 수 있다는 소망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먼저 고린도전서 6장 9~11절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리고 이어서 여러 종류의 죄를 열거합니다.

음행, 우상숭배, 간음, 성적인 부도덕, 도둑질, 탐욕, 술 취함, 모욕, 속여 빼앗는 행위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1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반전이 나타납니다.

과거에 죄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9~10절을 읽으면서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구원받을 수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11절의 내용을 놓치는 것입니다.

 

2.고린도라는 도시를 먼저 알아야 한다

고린도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도시였습니다.

교통과 무역이 활발했고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경제적인 활동이 활발한 만큼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린도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시장에서도 거래해야 했으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종교적·문화적 관습과 접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교회가 가진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과거에 익숙했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

바울은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3.고린도교회는 실제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고린도전서를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교회 안에는 여러 갈등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들 사이에 편이 갈리기도 했고, 서로 다투기도 했습니다.

성적인 문제도 있었으며 재산과 권리를 둘러싼 분쟁도 발생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개별 사건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성도들이 서로 법정에 고소하는 문제까지 다룹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9~11절을 읽으면 바울이 왜 죄의 문제를 그렇게 강하게 다루었는지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4."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

가장 먼저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음행이나 간음을 한 번이라도 하면 무조건 구원받지 못한다.”

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인간이 모두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이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았기 때문에 받는 보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을 경고하는 것일까요?

핵심은 죄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실수로 죄를 범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과,

죄를 반복하면서

“이것이 나의 삶이다. 나는 바뀔 생각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의 경고는 후자의 삶을 매우 심각하게 다룹니다.

 


 

5.음행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에서 음행은 성적인 부도덕을 가리키는 폭넓은 표현입니다.

성경은 성적인 관계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음행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적 질서를 벗어난 성적인 부도덕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현대의 모든 성적 문제를 한 단어로 기계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핵심은 성적인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을 무시하는 삶을 경계한다는 것입니다.

 


6.간음과 성폭행은 구분해야 한다

성경을 이해할 때 이 부분은 정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간음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으로, 혼인관계를 배반하는 성적 부정입니다.

성폭행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간음과 성폭행은 같은 단어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합의하여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경우는 간음의 문제입니다.

반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성적인 행위를 했다면 성폭력의 문제입니다.

만약 기혼자가 성폭행을 했다면 성폭력 자체의 죄와 더불어 혼인관계에 대한 배반이라는 문제도 함께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간음 = 성폭행”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7.우상숭배는 단순히 우상에게 절하는 것만이 아니다

고린도 당시에는 다양한 신을 섬기는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이러한 환경은 상당한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아닌 존재를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상숭배는 마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보다 돈, 권력, 명예, 성공, 욕망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 그것이 사실상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정직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생각한다면 돈이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를 이해할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도움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8. 왜 바울은 도둑질과 탐욕을 함께 언급했을까?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바울은 성적인 죄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재산과 돈에 대한 죄도 함께 언급합니다.

도둑질하고, 탐욕을 부리고, 다른 사람을 속여 빼앗는 행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삶으로 설명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몰래 가져가는 것은 당연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직접 훔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경제적 행위가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이나 기만을 통해 상대방의 돈을 빼앗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것 역시 정직과 공의의 문제입니다.

성경의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버는 방법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신앙의 영역입니다.

 


9. 탐욕은 부자가 되는 것과 다르다

 

성경은 정당하게 일하고 재산을 얻는 것 자체를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재물이 삶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나만 이익을 보면 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상관없다.”

라는 생각이 계속된다면 탐욕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탐욕을 우상숭배와 연결합니다.

재물이 하나님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결국 돈이 삶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10. 술 취함과 모욕도 죄의 목록에 들어 있다

바울은 술 취하는 사람과 모욕하는 사람도 언급합니다.

여기에서 성경이 특별히 경계하는 것은 술에 지배되어 절제력을 잃는 상태입니다.

또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헐뜯고 모욕하며 관계를 파괴하는 태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죄의 문제는 매우 넓습니다.

성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돈, 욕심, 술, 말, 인간관계, 정직성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1. 그렇다면 과거에 이런 죄를 지었던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 11절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이 말은 과거에 그런 죄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과거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과거에 그런 사람이었으니 끝났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고 선언합니다.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12. “씻음”은 죄에서 깨끗하게 된다는 뜻

‘씻음’은 죄로부터 깨끗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죄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영원히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성적인 죄를 지었던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했다면, 그 사람은 과거의 죄만으로 평가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기독교 복음은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13. “거룩함”은 죄가 전혀 없는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회개한 사람은 앞으로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입니다.

과거에는 죄를 당연하게 생각했다면 이제는 죄를 죄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서려고 합니다.

죄를 반복해서 짓더라도 그것을 합리화하기보다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성화의 방향입니다.

 


14. “의롭다 하심”은 인간의 완벽함을 뜻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칭의는 사람이 자신의 선행으로 완벽해져서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인간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착해서 구원받았다.”

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라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 이해입니다.

 


 

15. 사례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사례 1 — 과거에 간음했던 사람

한 사람이 결혼생활 중 다른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후 자신의 죄를 깨닫고 관계를 끊고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잘못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너는 과거에 간음했으니 영원히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도 성경의 복음과 맞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은 과거에 죄 가운데 있던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례 2 — 죄를 계속 붙들고 있는 사람

반대로 결혼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겠다.”

라고 하고 자신의 행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과거의 실수가 아니라 현재의 삶 자체를 죄 가운데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0절의 경고는 이런 삶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사례 3 — 과거에 사기를 쳤던 사람

과거에 다른 사람을 속여 돈을 빼앗았던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범위에서 피해를 회복하고 다시는 같은 방법으로 이익을 얻지 않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회개가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례 4 — 계속 사기를 치면서 신앙을 이용하는 사람

반대로 계속 다른 사람을 속이고 돈을 빼앗으면서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괜찮아.”

라고 한다면 성경의 은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허락하는 면허증이 아닙니다.

은혜는 죄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16. 고린도전서 6장 9~11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1절이다

이 본문을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이 9~10절의 죄 목록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고 싶은 중요한 결론은 11절에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그리고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과거의 죄가 있었지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경고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7. 오늘날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약 2천 년 전 고린도와 오늘날의 사회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에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모습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있고,

성적인 욕망이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며,

술이나 여러 욕망에 자신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의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나는 세상의 가치관에 끌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기준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가?”

이것이 본문을 오늘날 적용할 때 중요한 질문입니다.

 


 

18.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1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찾아내는 데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내 욕심을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돈 때문에 정직함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적인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을 말로 상처 입히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잘못한 것을 인정하기보다 계속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결론|고린도전서 6장 9~11절이 말하는 진짜 복음

고린도전서 6장 9~10절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사람의 삶은 죄를 붙들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삶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1절은 그보다 더 큰 소망을 보여줍니다.

과거에 죄 가운데 살았던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씻음 받고, 거룩하게 되며,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며 죄 가운데 계속 살아가지 말라. 그러나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회개하고 용서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6장 9~11절을 이해하는 중요한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단순히 “죄짓지 마라”​는 명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

고린도전서 6장 11절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소망입니다.

과거가 사람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말씀에 담긴 복음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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